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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나아브라모비치여기있다] 자신을 위한, 자신에 대한 채찍질영화&드라마 2021. 4. 25. 10:59
2021년 4월 19일 월요일 저녁
저녁을 먹으면서 왓챠를 틀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기 위해서이다.
예전에 유튜브에서 스쳐 지나간 썸네일이 계속 마음에 맴돌았다.
"몇십 년 전에 헤어졌던 애인과 마주친 예술가" 뭐 이런 류의 제목이었다.
어그로 성이 다분히 있었지만 그 유튜브 영상을 보지는 않았고 이 다큐멘터리를 바로 보게 됐다.
현대미술을 좋아한다.
화가의 의도나 뜻을 보자마자 깨닫고 하는 그런 본질을 꿰뚫는 감각은 없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의 해석의 여부를 마련하고 이리저리 퍼즐을 맞춰보는 듯한 그 느낌이 좋다.
반면에 이런 풀이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너무 난해하고 뜻이 있는지도 의심스러우며 꿈보다는 해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 다큐를 보기 전에 한 남녀가 작품이 참여 예술인 줄 알고 색을 칠해서 이슈가 되었다.
대부분의 댓글이 원래 있던 것 같다, 별 차이 없다 라고 했다.
누구의 잘못이냐를 떠나서 사람들이 예술, 특히나 현대 예술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행위예술은 몸을 통한 직접적 표현으로 강렬함이 배가 되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 때문에 오히려 뜻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그 감각만이 남겨질 수도 있는 위험이 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도 당연히 대중에게서 많은 질타를 받았다.
선정적이다, 미친 여자다 등의 비난을 당신이 예술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받아왔다고 했다.
그럼에도 마리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예술이 인생의 전부였다.
마리나의 경험, 생각, 감정들을 행위예술이라는 프리즘으로 투영시켜 대중에게 호소하는 메니페스토와 같았다.
예술을 위한 마리나의 혹사는 평범한 정신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본인에게뿐만 아니라, 그것을 감상하는 대중에게도 말이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여기 있다] 에서는 2010년에 기획한 작품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사각형의 필드 안에 오직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으며 한 명은 마리나이며 또 다른 한 명은 대중인 것이다.
그 누구든 마리나에 앞에 앉을 수 있다 (물론 위험해 보이는 사람은 경비원이 제제하지만 말이다).
마리나 앞에 앉은 사람들은 정말이지 다양했다.
그 영상을 통해서만 보았지만 모두가 다른 사람이었고 눈물을 흘려도 모두가 다른 방식을 흘리는 듯했다.
그녀는 그 오랜 시간을 가끔 숙이기만을 할 뿐 앉아서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가만히 있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그 편린을 느껴본 적이 있다.
나름 큰 수술을 거치고 꼬박 하루를 움직이면 안 된다고 했던 때의 고통은 수술 부위의 아픔보다 더 크게 와 닿았다.
그래서 한 자리에서만 한 가지 행위만을 해야 하는 마리나의 힘듬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마리나는 끝까지 수행했다.
마리나는 자신을 다시 한번 극한까지 혹사시킨 것이다.
어쩌면 마리나에게 SM 성향이 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은 했지만 그게 어쨌단 말인가
마리나는 끝까지 타협하지 않았다.
그러한 채찍질을 견뎌내는 초인 같은 정신력에 나는 섬뜩함을 느꼈다.
내가 평생에 발휘할 수 있을까도 의심스러운 정신력을 작품마다 보여주는 모습에서 반성과 경탄을 동시에 느끼게 되었다.
현재 마리나가 어떤 전시를 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죽기 전에 그 사람 앞에 서보고 싶다.
일상에서 조차 남과 눈을 잘 못 마주치는 내가 마리나 앞에서는 어떤 것을 경험할 수 있을지 너무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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