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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멕시코 음악처럼영화&드라마 2021. 3. 3. 12:44
2021년 3월 2일 점심을 먹고 난 오후
할 일은 많았지만 하기가 싫어서 영화를 보기로 했다.
왓챠를 켜자마자 [프리다]의 썸네일과 눈을 마주쳤다.
시큰둥하고 약간 장난기 있는듯한 이웃집 이모 같은 눈과 얼굴
거기에 갈매기 눈썹에서 재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난 아무래도 정면으로 날 바라보는 것을 버티기가 힘든가 보다.
이 영화는 당연히 프리다 칼로의 전기를 다룬 영화이다.
프리다 칼로에 대해서는 몇몇 작품만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끌리지는 않았다.
그림체 때문인지 제대로 눈여겨본 적도 없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왜 프리다 칼로가 영화화가 되었는지 알 거 같았다.
정치적으로도 혼란스러운 멕시코에서 태어난 프리다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수없이 많은 역경을 대면한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나도 피폐했던 프리다에게 오직 그림만이 그 아픔을 아낌없이 표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분출구였던 것이다.
영화에 나왔던 많은 그림들은 전부 거울에 비쳤던 그녀의 모습이었다.
남의 시선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보며 끝까지 살아갔다.
뜨거운 한이 서린 멕시코 음악들처럼.
현대에도 아직 사고 후 장애는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에도 너무나도 큰 아픔을 남긴다.
평생 한 기능 혹은 그 이상의 기능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굉장한 제약이며 야생의 동물이었다면 그대로 죽음으로 직결된다.
인간이기에 이러한 사회제도 및 치료법을 수립하고 행하지만 완벽한 치료가 진행된 사람들은 정말 극소수이다.
프리다가 살았던 시대는 오죽 더 심했을 것이며 훨씬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프리다는 일어섰고 그림을 그렸다.
프리다는 그 이상을 하기를 원했다.
평생 따라오는 몸의 아픔과 남편의 끊임없는 외도에도 프리다는 멈추지 않았다.
이러한 아픔이 없었다면 프리다의 작품들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자신의 고통을 표현한 것들이 되려 남들에게 영감을 주는 이러한 아이러니 또한 참 잔인한 거 같다.
만약 그림의 재능과 몸의 회복 둘 중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면 무엇을 선택했을까?
무엇보다도 셀마 헤이엑의 연기가 너무 좋았고 음악 또한 너무 취저라 재밌게 본 작품이다.
영화 많은 부분이 디에고와의 관계를 보여주긴 했지만 그것 또한 프리다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이기에 납득했다.
그 멕시코 음악들을 다시 찾아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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